[판결] 사과는 무죄, 감은 유죄(남의 땅에 과실나무를 심은 경우)
[판결] 사과는 무죄, 감은 유죄
법률신문 박수연 기자
2025-08-24 09:08
외국에 있는 땅 주인 몰래
사과나무 심고 8년 뒤 수확
“절도·횡령·재물손괴 아니다”
남의 땅에 사과나무를 심은 뒤 수확해 가져가면 절도나 횡령,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최근 한 사건에서 법원은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실관계]
A 씨는 1999년부터 경기도 시흥에 있는 땅에 농작물을 재배했다. 이 땅은 B 씨가 2008년 부친의 지분을 상속받은 뒤 2009년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친 토지였다. A 씨는 이 땅에 2014년 사과나무를 심어 키우기 시작했고, 2021년 10월 사과 약 80개를 수확했다. 외국에서 지내던 땅 주인 B 씨는 2022년 한국에 들어와 자신의 땅에 사과나무가 심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B 씨는 A 씨에게 토지의 점유와 사용을 중지해달라고 요청했으나, A 씨는 “사과나무는 내 소유”라며 언쟁을 벌였고, 2022년 10월경 사과 160개를 또 수확했다. A 씨는 사과 절도 혐의로 기소됐다.
[하급심 판단]
1심은 A 씨의 사과 절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70만 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과정에서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해 사과 횡령 혐의와 사과나무 재물손괴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 항소심은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횡령(일부)과 재물손괴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다투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항소심은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점유를 침해해야 하는데, 이 사안에서는 A 씨가 정당한 점유 권원이 없었더라도 사과를 현실적으로 점유하고 있었다고 보아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단]
항소심이 유죄로 판단했던 횡령·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는 A 씨가 상고했고, 대법원 형사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7월 17일 두 혐의 모두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2025도978).
대법원은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한 위탁 신임 관계가 A 씨와 B 씨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횡령죄에서 보관이란 위탁 관계에 의해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한다.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위탁 신임 관계가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B 씨가 땅을 상속받은 지 14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점유·사용을 중지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위탁 신임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사과를 수확한 행위가 재물손괴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물손괴죄는 재물의 효용 자체를 해쳤을 때 성립하는데, 사과를 수확하는 것은 원물인 사과나무를 본래의 용법에 따라 사용하는 행위이므로 사과나무의 효용 자체가 침해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이다.
재판부는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본래의 용법에 따라 무단으로 사용·수익하는 행위는 소유자를 배제한 채 물건의 이용 가치를 영득하는 것”이라며 “그 때문에 소유자가 물건의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더라도 효용 자체가 침해된 것이 아니므로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변호인 의견]
김준우(48·변호사시험 5회) 법무법인 광덕 대표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탁 신임 관계는 ‘조리’에 의해서도 성립할 수 있으나, 그 전에 먼저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재물손괴죄와 다른 영득죄와의 구별 기준을 재차 명확히 제시했고, 피고인은 자기 소유의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수취한다는 인식만 있어 재물손괴죄의 고의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시도 주목해야 한다. 민법 제256조(부동산에의 부합)만으로 형사상 고의를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이라 의의가 있다.”
남의 땅에 심은 감나무 20그루
땅 주인 이의 제기로 처리 일임
이후 50개 땄다가 벌금 50만 원
남의 땅에 나무를 심어 열매를 따는 행위가 모두 ‘절도가 아니다’고 판단된 것은 아니다. 타인의 땅에 감나무를 심어 수확했던 피고인에 대해 절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판결도 있다.
[사실관계]
C 씨는 1996년 10월 남의 땅에 심은 감나무에서 감을 수확해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C 씨는 15년 전 자신이 소유한 밀양군 토지와 인접한 다른 사람의 토지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감나무 20그루를 심었다. 1993년 인접 토지를 매수한 D 씨는 건물을 짓기 위해 경계를 측량한 결과, 감나무가 심어진 부분이 자신의 소유 토지임을 알게 됐다. D 씨는 감나무 철거를 요구했고, C 씨는 감나무 처분을 D 씨에게 일임했다. D 씨는 건축에 방해가 되는 감나무 17그루를 철거하고 3그루는 그대로 둔 채 2년 동안 감을 수확했다. C 씨는 이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공소장에 기재된 일시에 갑자기 감 50개를 딴 것으로 조사됐다.
[하급심 판단]
1심은 C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C 씨에게 절도의 범의가 있다고 보고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C 씨가 자격 정지이상의 전과가 없고, D 씨와 토지 경계 분쟁 중 범행을 저질러 동기에 참작할 점이 있었다. 또 피해액이 2만 4000원 상당으로 경미한 점 등을 고려해 재판부는 벌금 50만 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도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타인의 토지상에 권원 없이 식재한 수목의 소유권은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하고, 권원에 의하여 식재한 경우에는 그 소유권이 식재한 자에게 있다”며 권원 없이 심은 감나무에서 감을 수확한 것은 절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97도3425).
이후에도 남의 땅에 심은 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토지 소유자의 것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민법 제256조는 ‘부동산의 소유자는 그 부동산에 부합한 물건의 소유권을 취득한다. 그러나 타인의 권원에 의하여 부속된 것은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위 조항 단서에서 말하는 ‘권원’이라 함은 지상권, 전세권, 임차권 등과 같이 타인의 부동산에 자기의 동산을 부속시켜서 부동산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므로, 그와 같은 권원이 없는 자가 타인의 토지 위에 나무를 심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토지 소유자에 대해 나무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2015다69907).
